해외여행객들이나 출장자들이 비행기를 타면 먼저 확인하는 것 중 하나가 비행기 안의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시스템이다. 장기간 비행을 하는 승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영화를 상영했는데, 10년 전까지만 해도 프로젝터로 투시하는 흐릿한 화면으로 봐야 했다. 운 나쁘게 프로젝터 바로 앞자리나 대각선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앉는다면 영화 내용은 고사하고 도착지에 내릴 때쯤이면 한 쪽으로 보다가 경직된 목 때문에 고통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1년의 비행기 안 풍경을 보자. 대부분 사람들은 좌석 뒤에 붙어 있는 개인화 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이용해 시간을 보낸다. 자신이 선택한 영화, 드라마, 뉴스, 음악을 듣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아예 자신이 보고 싶은 콘텐츠를 미리 담아 노트북PC나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에 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태블릿 PC로 완전한 자신만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태블릿 PC가 PC를 대체할 것인가 ?
태블릿 PC의 등장과 함께 IT업계가 언쟁을 벌이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태블릿 PC가 PC 시장을 대체할지 여부다. 이와 관련, 당분간 두 업계는 서로 영역을 지키면서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지만, 태블릿 PC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태블릿 PC가 기존 데스크톱 PC나 노트북 PC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일정 부분 시장을 잠식하면서 기존 PC시장과 별개로 태블릿 PC가 성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이유는 PC 경우 콘텐츠를 만드는 데 쓰이는데 적합하고, 태블릿 PC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에 대체 제품이 아닌 상호보완제품으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태블릿 PC, 콘텐츠 시장을 바꾸다
한 PC업체 관계자는 “태블릿 PC도 문서를 작성하거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만, 아무래도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두 기기는 상당기간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태블릿 PC 시장이 향후 몇 년 동안 새로운 시장으로 급성장하겠지만 PC시장도 현 수준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자로 밥을 떠먹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국자 대신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얘기다. 터치스크린을 상황에 따라 가상 키보드로 사용하는 태블릿 PC는 간단한 단어나 문장은 입력할 수 있지만 노트북 PC만큼 빠른 입력 또는 편집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태블릿 PC는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10인치 미만 작은 화면을 가지고 있으며 고성능보다는 오래 사용 할 수 있게 전력 소모가 작게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태블릿 PC 등장 이후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곳은 콘텐츠 업계다. PC 또는 휴대전화 기반으로 만들어졌던 콘텐츠 시장이 급격히 태블릿 PC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와 같은 배경에는 태블릿 PC 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성장한 스마트폰 시장 역할도 크다.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은 외부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개인화 성향이 높기 때문에 PC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적판 소프트웨어가 적은 편이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돈이 되는 시장’임이 확인했기 때문에 PC 시장보다 확실한 수익을 보장하는 태블릿 PC 시장 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태블릿 PC와 관련된 콘텐츠 시장은 영화, 드라마 등 전통적인 영상 부문과 게임, 뉴스, 음악 등이 있다. 특히 주목 받는 부문은 전자책 시장으로 피플, 타임스, 포브스 등 미국의 주요 잡지사들은 태블릿 PC용 전자잡지를 따로 만들고 있을 정도다. 그 동안 잡지사들은 인쇄비와 물류비, 재고관리 등에서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는데, 태블릿 PC 경우 이 같은 고정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운영상 비용은 줄이는 대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전자책 단행본 업체들도 태블릿 PC 시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마존 ‘킨들’, 아이리버 ‘스토리’ 등으로 대표되는 전자잉크 기반 전자책 단말기의 경우 사용시간은 길지만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구현하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태블릿 PC는 웹이나 멀티미디어 연동이 쉽기 때문에, 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광고주들도 선호하고 있다.
IT업계에서 태블릿 PC가 주목받는 이유는 갈수록 개인화되는 추세에 적합한 제품이며 다양한 산업과 연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통신사업자들은 태블릿 PC에 3G 또는 차세대 통신망인 4G를 기본 탑재시켜 휴대전화 외에 새로운 수익원으로 키울 예정이며, 가전업체들은 TV와 연계해 TV 콘텐츠를 태블릿 PC와 연동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심지어 자동차 업체와 네비게이션 업체들도 태블릿 PC를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주인공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뒤면 자동차 안에 타자마자 할 일은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 아니라 태블릿 PC와 자동차를 동기화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올해 태블릿 PC는 적게는 100여 종, 많게는 200여 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대부분은 기존 PC나 통신업체, 가전업체들이 내놓는 것으로 구글 안드로이드 기반 또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7 기반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렇게 많은 제품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은 5종 이내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각 업체마다 기능이 비슷하기 때문에 시장 주도권을 잡은 업체로 수요가 쏠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아이패드를 출시한 애플이 올해 후속 제품을 출시하는지 여부에 따라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은 가장 먼저 쓸만한 태블릿 PC를 내놓았으며 출시된 지 1년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주요 IT 시장조사업체도 향후 5년 간은 애플이 태블릿 PC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스마트폰 경쟁에서 확인 했듯이 태블릿 PC 시장도 제품을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과 본래 목적인 ‘콘텐츠’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2011년 미디어 시장과 콘텐츠의 행보
그렇다면 ‘태블릿 PC 대중화 원년’으로 예상되는 2011년 콘텐츠 시장, 미디어 시장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우선 기존 미디어를 구분했던 경계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TV, 라디오, 신문 등으로 구분됐던 경계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낮아졌으며 태블릿 PC의 등장으로 한번 더 낮춰질 전망이다. 사람들은 사무실 책상 위에서만 봤던 뉴스와 영화, 인터넷 검색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이 간단한 정보 검색은 가능하지만 작은 화면으로 인한 답답함을 감수해야 했던 것과 달리, 태블릿 PC는 고성능 칩셋과 넓은 화면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콘텐츠 소비가 발생한다.
이런 환경에서 미디어와 콘텐츠는 즉시성과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PC는 전원이 꺼져도 태블릿 PC는 전원이 꺼지는 법이 없다. 부팅 할필요 없이 언제나 ‘준비’ 상태이기 때문에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소비자들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한다. 콘텐츠는 화려한 화면 효과보다 열악한 통신망에서도 빠른 접근과 실행이 가능한 쪽이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태블릿 PC 뿐 아니라 다양한 기기에서도 원활한 접근을 허용하는 호환성도 중요해진다. 현재 국내 미디어들은 콘텐츠 제작 시 웹 표준을 따르지 않아 운영 체제나 기기에 따라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으로 특정 웹페이지에 접속했을 때 아무 정보도 나오지 않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애플 iOS는 어도비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일은 어도비 플래시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체제 중심으로 만들어진 국내 IT업계 고질적인 문제다.
이처럼 앞으로 콘텐츠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미디어 시장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디어 시장에서 이른바 주류 미디어와 비주류 미디어 간 격차는 지금보다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미디어 가치를 평가할 때 ‘얼마나 많이 봤느냐?’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참여가 이뤄졌느냐?’라는 사용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태블릿 PC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최대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콘텐츠다. 이전에는 이런 콘텐츠를 찾고, 검증하고, 알리는 것이 어려워 콘텐츠 자체 경쟁력보다 미디어 경쟁력이 우월했다. 하지만 이제 콘텐츠 수준은 소비자들이 평가하고 공유하는 시대가 됐다. 그리고 이 정보들은 순식간에 퍼진다. 태블릿 PC가 등장한다고 당장 미디어 시장에 큰 변화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전과 같은 미디어, 콘텐츠 업계간 경쟁이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미디어 시장에 일으킨 파장이 태블릿 PC로 본격화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 오케이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2-02-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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